스타벅스 대표 해임, 정용진 결단에도 남는 씁쓸함
팩트부터 깔고 가자
2024년 5월 18일, 스타벅스 코리아는 텀블러 할인 행사를 ‘탱크데이(Tank Day)’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 문제는 이날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44주년 기념일이었다는 점이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탱크는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날의 탱크는 억압과 폭력의 상징이었다.
여기에 더해 행사 문구에 ‘책상이 탁’ 같은 표현까지 포함되면서 논란은 폭발했다. 이 표현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이 한 발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를 연상시켰다. 두 개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동시에 건드린 셈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손정현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는 당일 긴급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과문이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손 대표를 즉각 해임했다. 여기에 기획 및 검수에 관여한 관련자 전원을 문책하고, 재발방지 시스템 구축을 약속했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사과에서 해임까지 걸린 시간, 단 몇 시간. 이건 단순히 빠른 조치가 아니라, 사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빠르게 읽었다는 뜻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이게 정말 ‘실수’였을까?
대기업의 마케팅 캠페인은 최소한 이런 단계를 거친다: 기획팀 아이디어 회의 → 상급자 검토 → 법무/컴플라이언스 검수 → 경영진 승인 → 디자인 제작 → 최종 검수 → 게시. 적어도 5~7단계, 10명 이상의 손을 거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탱크데이’라는 이름을 5월 18일에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책상이 탁’이라는 표현이 어떤 맥락을 가졌는지, 아무도 몰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조직 전체의 역사 감수성이 마비됐다.
마케터는 마케팅만 생각했을 것이고, 법무는 법적 리스크만 봤을 것이고, 경영진은 매출 지표만 확인했을 것이다. 누구도 “이건 아닌데”라고 말하지 않았거나, 말했어도 묵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더 무섭다.
스타벅스는 글로벌 기업이다.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교육을 하고, 소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홍보해왔다. 그런 기업이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 두 개를 동시에 건드렸다. 이건 시스템의 실패다.
정용진의 칼, 그리고 의구심
정용진 부회장의 대응은 명확했다. 사과로는 부족하다. 책임자를 자르고, 시스템을 바꾼다. 경영자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조치였다.
하지만 여기서 씁쓸함이 시작된다.
정용진은 그동안 보수 진영에서 ‘직설적이고 소신 있는 경영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SNS에서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거나 우파적 색채를 드러내는 발언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진보 진영은 그를 ‘정치적 경영인’으로 인식해왔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번 조치가 진정성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여론의 불길을 끄기 위한 계산된 결단인지, 시민들은 확신하지 못한다는 거다.
특히 5·18은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보수 갈등의 뇌관이었다. 정용진이 평소 보여온 정치적 지향과, 이번 해임 조치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엔 신뢰가 부족하다. “진짜 미안해서 자른 건가, 아니면 브랜드 이미지 지키려고 자른 건가?”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면, 조치는 그저 ‘위기관리 매뉴얼의 실행’으로만 읽힌다.
사과의 온도
손정현 전 대표의 사과문도 마찬가지다. “깊이 사과드린다”, “재발 방지하겠다”는 표현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왜 어떻게 이런 실수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책임 소재도 모호했다.
사과의 핵심은 인정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짚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고, 어떻게 바꿀 건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용서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스타벅스의 사과는 ‘죄송합니다’와 ‘재발 방지’라는 단어만 반복했다. 이건 사과가 아니라 면피다. 그리고 그 면피마저 몇 시간 만에 휴지 조각이 됐다.
BluntEdge 관점: 이건 조직문화의 문제다
이 사건을 단순히 ‘마케팅 실수’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이건 조직문화의 문제고, 한국 사회 전반의 역사 감수성 문제다.
스타벅스 같은 대기업 안에서 누군가 “이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상명하복, 실적 압박, 속도 중시 문화 속에서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감수성’ 같은 건 뒷전이 된다.
그리고 이건 스타벅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엔 모 패션 브랜드가 위안부 피해자를 조롱하는 듯한 디자인을 내놓았고, 어떤 기업은 세월호를 희화화한 광고를 냈다가 역풍을 맞았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조직 안에 역사를 기억하고,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
정용진의 해임 조치는 필요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되어선 안 된다. 스타벅스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이거다:
1. 역사 감수성 교육을 전 직원 대상으로 의무화
2. 마케팅 기획 단계에 사회적 맥락 검토 시스템 구축
3. 내부 고발 및 문제 제기를 보호하는 문화 정착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이번 조치는 그저 ‘불 끄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나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는 “빠른 조치 좋았다”고 평가하고, 일부는 “정용진의 평소 행보를 생각하면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한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조치는 필요했고, 의구심도 타당하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이거다: 가해의 역사는 쉽게 잊히고, 피해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5·18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유가족들은 그날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박종열 열사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를 짓밟아도 된다는 면죄부는 없다. 특히 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