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 키워놓고 칼 맞으니 축소? 조국의 역설
팩트부터 깔고 가자
2017년 5월, 민정수석 조국.
그의 책상 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조직개편안이 놓여 있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4개부 체제였다. 조국 수석이 주도한 개편안은 이를 5개부로 확대하고, 특수부 검사 정원을 40명에서 50명으로 늘렸다. 여기에 수사관 정원까지 증원했다. 인사·조직·예산 담당 보직까지 전부 특수부 출신 검사로 채웠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이건 역대 최대 규모였다.
당시 청와대는 이렇게 말했다. “적폐청산을 위한 수사 역량 강화”라고. 그렇게 키운 칼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가 진행됐다. 특수부는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기관이 됐다.
그런데 2019년 9월, 법무부 장관 조국.
취임 직후 그가 제일 먼저 들고 나온 카드는 “특수부 축소”였다.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조국은 특수부를 키웠다.
“적폐청산을 위해선 강력한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2019년 8월, 조국 자녀 입시 의혹이 터졌다. 정경심 교수 표창장 위조 의혹, 사모펀드 의혹, 웅동학원 비리 의혹까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조국 가족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9월, 조국은 법무부 장관이 됐다.
취임 36일 만에 내놓은 개혁안의 핵심은? 특수부 폐지 또는 축소.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내가 키운 칼이 나한테 돌아오니까, 이제 칼을 줄이겠다.”
검찰개혁을 왜 특수부 키울 때는 안 하고, 자기가 칼 맞을 때 했냐는 거다.
개혁의 순서
개혁이라는 건 순서가 생명이다.
만약 조국이 진정으로 검찰개혁을 원했다면, 특수부를 키우기 전에 먼저 개혁을 했어야 했다. 검찰 권한을 분산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견제 시스템을 만들고, 그 다음에 적폐청산 수사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순서가 거꾸로였다.
먼저 특수부를 역대 최대로 키웠다.
그 칼로 정적을 수사했다.
그리고 자기가 칼날 앞에 서자, 그제야 “검찰개혁”을 외쳤다.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조국은 검찰 권력이 문제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 칼날이 자기를 향한 게 문제였다는 거다.
BluntEdge 관점: 칼을 든 자의 책임
조국을 둘러싼 논쟁은 복잡하다.
그의 개혁 의지가 진짜였는지, 수사가 정치적 탄압이었는지, 사법 정의는 어디에 있는지. 각자 입장이 다르고, 해석도 엇갈린다.
하지만 팩트는 하나다.
조국은 특수부를 키운 장본인이고, 그 특수부에 수사받게 되자 특수부 축소를 주장했다.
이건 원칙의 문제다.
만약 당신이 “검찰 권력은 위험하다”고 믿는다면, 그 권력을 먼저 줄이고 수사를 해야 한다. 반대로 “강력한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그 칼날이 자기한테 돌아와도 받아들여야 한다.
조국은 둘 다 했다.
필요할 땐 키웠고, 위험할 땐 줄이려 했다.
이게 개혁인가, 생존본능인가?
지금 조국혁신당을 보며
2024년, 조국은 정당을 만들었다.
당명에 “혁신”을 넣었고, 여전히 검찰개혁을 외친다.
근데 진짜 질문은 이거다.
당신은 검찰개혁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자격이란 건 도덕적 완벽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모순된 선택을 한다. 그런데 개혁을 말하려면 최소한 자기가 만든 시스템의 칼날을 자기도 받아들이는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조국은 특수부를 키웠다.
그 특수부가 자기를 수사했다.
그러자 특수부를 축소하려 했다.
이건 일관성이 아니라 이중잣대다.
물론 조국 지지자들은 말한다. “수사가 정치보복이었다”고. “그래서 개혁이 필요했다”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특수부를 키울 때는 그 위험성을 몰랐는가? 아니, 알면서도 정적을 수사하기 위해 눈감았던 건 아닌가?
이게 역설이다.
조국은 검찰 권력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 권력을 극대화했다. 그리고 그 칼날이 자기를 향하자, 그제야 개혁을 외쳤다.
개혁은 타이밍이 아니라 원칙이다
검찰개혁은 필요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특수부 폐지, 공수처 설립. 이런 논의들은 정파를 떠나 중요하다.
하지만 개혁은 내가 유리할 때 하는 게 아니라, 불리해도 해야 할 때 하는 것이다.
조국은 특수부를 키울 때 개혁을 했어야 했다.
칼을 만들면서 동시에 칼집을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칼만 만들었고, 칼날이 자기를 향하자 칼집을 요구했다.
이건 개혁이 아니라 자기방어다.
한 줄 결론
칼을 키운 자가 칼에 맞아 개혁을 외치는 건, 개혁이 아니라 후회다.
BluntEdge — 무딘 척하지만, 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