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동맹국 총리 체포 발언한 이유
팩트부터 깔고 가자
2025년 1월,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발언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발부한 영장에 따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한국에 입국할 경우 체포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발언의 배경은 이랬다. 가자지구 봉쇄 상황에 대한 비판, 그리고 현지에 억류된 한국인의 송환 요구. ICC는 2024년 11월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한국은 ICC 가입국이고, 영장 집행 의무가 있다. 여기까지는 법리적으로 맞는 얘기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외교에는 언어가 있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2021년 FTA를 체결한 우호국이다. 교역액 연 30억 달러, 방산·사이버 보안·물관리 기술 협력이 진행 중인 파트너다. 외교적 이견이 있어도, 상대 수반의 ‘체포’를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거론하는 건 외교 관례상 극히 이례적이다.
비교해보자. ICC는 2023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ICC 가입국들은 어떻게 했나? 영장 집행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각국 정상이 직접 나서서 “푸틴 오면 체포하겠다”고 선언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법무부나 외교부 채널을 통해 조용히 입장을 밝히는 게 전부였다.
미국은 ICC 결정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공개 반발했다.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인 미국 입장에서 네타냐후 체포 발언은 동맹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읽힌다. 한국이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수반 체포를 공언하는 건, 외교적 정합성 측면에서 복잡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인 송환은 협상 카드였다
발언의 또 다른 배경은 가자지구에 억류된 한국인 문제였다. 이건 분명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외교 협상은 조용히 진행되는 게 원칙이다. 상대 수반의 체포를 공개 거론하면서 송환을 요구하는 건, 협상 테이블을 뒤집는 행위에 가깝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역대 한국 정부는 해외 억류 국민 송환 협상을 비공개로 진행했고, 성과가 나온 뒤에야 발표했다. 2007년 탈레반 인질 사건, 2015년 IS 억류 한국인 사건 모두 마찬가지였다. 협상 중에 상대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면, 오히려 협상 여지가 줄어든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즉각 반발했다. “ICC 결정은 정치적이며, 한국의 발언은 유감”이라는 성명을 냈다. 미국 국무부도 “동맹국 간 긴밀한 협의를 기대한다”는 우회적 메시지를 전했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왜 이러시나요?”
BluntEdge 관점: 원칙과 실리 사이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비판할 건 비판하되, 외교 언어는 지켜야 한다는 것.
가자지구 상황에 대한 비판, ICC 영장 존중, 한국인 송환 요구. 이 모든 게 정당한 입장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무회의라는 공식 석상에서, 우호국 수반의 체포를 거론하는 건 외교 채널을 우회하는 행위다. 이건 원칙을 지키는 게 아니라, 원칙을 무기로 쓰는 거다.
외교는 말이 아니라 채널로 한다. 대통령이 할 말이 있으면 정상 통화를 하고, 외교부가 공식 입장을 내고, 법무부가 ICC 영장 집행 절차를 검토하면 된다. 그게 순서다. 그런데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체포 검토’를 공언하면, 뒤에 남는 건 외교부 장관의 수습 브리핑뿐이다.
이건 국내 정치용 발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자 사태에 대한 진보 진영의 비판 여론을 의식했거나, 한국인 억류 문제에 대한 강경 대응 이미지를 만들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하지만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선이 아니다. 한 번 나간 말은 돌이킬 수 없고, 상대는 그 말을 기록한다.
푸틴 영장 때도 각국이 조심스러웠던 이유가 있다. 외교는 오늘의 적이 내일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영역이다. 네타냐후가 총리직을 내놓는다 해도, 이스라엘이란 국가는 남는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한국이 관계를 유지해야 할 몇 안 되는 기술 선진국이다.
외교 언어를 지킨다는 건 비굴함이 아니다. 그건 장기전을 위한 전술이다. 오늘 박수받으려고 던진 말 한마디가, 내일 협상 테이블에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외교관들은 안다. 그래서 그들은 조심스럽게 말한다.
결론
대통령은 법정이 아니라 외교 무대에 서 있다. 원칙을 지키되, 언어는 선택해야 한다.
BluntEdge — 무딘 척하지만, 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