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진 선거, 창피해”…배우 한정수
*지지자의 쓴소리가 팬덤의 함성보다 정당에 더 필요한 이유*
팩트 정리
팩트부터 깔고 가자.
2025년 지방선거 결과,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2곳을 가져갔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에 광역단체장 12곳 중 11곳을 내줬던 것과 비교하면, 수치상으로는 극적인 반등이다. 당 안팎에서 “회복세”를 자평할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배우 한정수 씨는 그 와중에 SNS에 이렇게 썼다. “민주당이 진 선거, 창피해.” 민주당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혀온 인물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무게가 실렸다. 팬덤의 박수 소리 속에서 나온 야유 한 마디가 때로는 가장 정확한 현실 진단이 되는 법이다.
그의 지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서울시장을 못 가져왔다.
2. 선거 내내 당권 싸움에 몰입했다.
이 두 가지, 반박하기 어렵다.
서울이 말해주는 것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광역단체장 12곳이라는 숫자는 분명 성과다. 하지만 서울시장은 그 12곳에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 기초단체장에서도 기대를 밑돌았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민주당이 가져간 곳은 손에 꼽을 수준이다.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한국 정치에서 서울은 단순한 지역구가 아니다. 서울은 민심의 집약이고, 다음 대선의 전초전이며, 여론 주도층이 밀집한 상징 공간이다. 서울을 못 잡으면 12곳을 이겨도 절반짜리 승리다. 민주당 지도부가 “선전했다”고 자평할 때, 유권자들이 “근데 서울은?”이라고 묻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지방에서 이기고 수도에서 지면, 그건 정권 교체의 발판이 아니라 지역 여당의 외연 확장에 그친다. 민주당이 진정한 정치적 복권을 원한다면 서울 민심을 어떻게 다시 얻을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당권 싸움에 몰입”이라는 진단
한정수 씨가 던진 두 번째 지적, “당권 싸움에 몰입”은 사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공공연한 불만이었다.
이번 선거 국면에서 민주당 내부는 지도부 갈등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당 대표 선출을 둘러싼 계파 간 긴장, 친명·비명 프레임, 공천 잡음. 유권자들이 “저 당이 집권하면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까”를 떠올리는 시점에, 민주당은 “저 당이 내부에서 먼저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더 집중해 보였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반성보다 계파 재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온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재명 대표 체제가 공고해질수록 내부 다양성이 줄어들고, 반론이 봉쇄된다는 비판도 있다. 지지자들의 쓴소리가 반복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BluntEdge 관점 — 지지자의 쓴소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보수 언론은 이 사안을 어떻게 보도할까. 뻔하다. “민주당 지지자도 등 돌려”, “내부 균열 심화” 같은 프레이밍으로 민주당 전체를 흔들려 할 것이다. 한정수 씨의 SNS 한 줄을 민주당 붕괴의 증거처럼 편집하는 건 그 언론들의 오랜 수법이다.
그 프레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정수 씨의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이 둘은 구분되어야 한다.
지지자의 내부 비판은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지지층이 “잘했다”만 외치는 정당은 성장하지 않는다. 팬덤 정치의 최대 부작용은 쓴소리가 들어올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언제나 뒤통수 맞는 선거 결과로 돌아온다.
민주당은 광역 12석 성과를 기반으로 당세를 재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기회를 자화자찬으로 소진하느냐, 아니면 서울 패인과 내부 갈등에 대한 냉정한 진단으로 전환하느냐에 따라 다음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서울에서 진 이유를 분석하지 않는 정당은 다음 선거에서도 서울을 잃는다. 그것이 정치의 법칙이고, 숫자가 증명하는 역사다.
반성할 건 반성해야 다음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은 반대편 지지자가 아니라 같은 편 지지자가 먼저 해야 더 힘이 실린다. 한정수 씨가 한 것처럼.
한 줄 결론
12곳을 이기고도 서울을 잃었다면, 그건 이긴 선거가 아니라 덜 진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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