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 면전에서 독설 날리는 정준희, 정치인 세탁소 그만.
“연대는 의미 있었다. 하지만 잔치가 끝나면 전선은 무너진다.”
팩트부터 깔고 가자.
최근 매불쇼(매일 불어나는 쇼)에 출연한 미디어학자 정준희 교수가 진행자 최욱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내용은 이렇다. 매불쇼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 즉 출연자를 돋보이게 해주는 ‘무릎팍도사식 진행’을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칭찬이 아니라 검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정준희 교수는 진보 미디어 생태계를 오랫동안 분석해온 학자다. 그가 공개 방송 중, 그것도 해당 진행자의 면전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건 단순한 쓴소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형식적인 비판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짚은 것이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당신의 쇼가 정치인 세탁소가 되고 있다.”
‘조불쇼’ 비판, 근거 없는 공격인가
매불쇼는 윤석열 정권 초기, 보수 언론이 장악한 미디어 환경에서 진보 시청자들의 정보 허기를 채워준 채널이다. 실제로 구독자 수십만 명을 확보하며 유의미한 대안 미디어로 성장했다.
그런데 ‘조불쇼’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조국혁신당 관련 인사들이 반복적으로 출연하면서, 비판적 검증 없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발언 기회를 얻었다는 비판이다. 팬층과 지지 정당의 이해관계가 채널의 편집 방향에 영향을 준다는 의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비판이 보수 언론에서 먼저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진보 진영 내부, 시청자 커뮤니티, 그리고 정준희 교수 같은 진보 성향의 미디어 연구자에게서 먼저 나왔다. 조선일보가 매불쇼를 공격하는 것과 정준희 교수가 매불쇼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맥락이다.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내부 비판을 탄압이나 진영 공격으로 오독하게 된다.
유튜브와 기성 언론의 비대칭 구조
정준희 교수 발언에서 BluntEdge가 특히 주목한 대목이 있다.
“유튜브는 실수 한 번에 시청자가 떠난다. 반면 기성 언론은 오보를 내도 구조적으로 버틴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수십 년간 수많은 오보와 편파 보도를 쏟아냈음에도 구독자가 급격히 이탈하지 않았다. 기업 광고, 종이신문 구독 관성, 교차 소유 구조, 그리고 정치권과의 유착이 그 버팀목이다. 짬짜미 시스템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반면 유튜브 기반 미디어는 시청자가 곧 편집국장이다. 알고리즘은 신뢰를 수치화한다. 한 번의 실망이 구독 취소 버튼 하나로 직결된다. 이 구조에서는 팬덤에 기대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치명적이다.
정준희 교수가 말한 핵심은 이것이다. 유튜브 미디어는 기성 언론이 가진 구조적 보호막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팬을 향한 쇼가 아니라 시청자를 향한 저널리즘을 해야 한다.
강미정 사건: 기계적 중립론의 역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최근 조국혁신당 내부의 성희롱 의혹 관련해서, 피해 당사자로 알려진 강미정 전 의원이 매불쇼에 반론 기회를 요청했다. 그런데 최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식 거절이었든, 무응답이었든, 결과적으로 피해 호소 당사자가 방송에서 배제됐다.
최욱은 과거에 직접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기계적인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가해자 편들기다. 이 원칙은 보수 언론을 비판할 때 적용했다. 그런데 이번엔 같은 원칙이 자기 채널에 적용되지 않았다.
이것을 ‘내로남불’이라고 부르면 너무 쉬운 비판이 된다. BluntEdge는 조금 더 정확하게 짚고 싶다. 이건 팬덤 미디어의 구조적 왜곡이다. 시청자가 아니라 팬을 보게 되면, 팬이 지지하는 세력을 불편하게 만드는 보도는 자기 검열의 대상이 된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이게 알고리즘 시대의 미디어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BluntEdge 관점: 연대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매불쇼가 성장한 힘의 원천은 진보 진영과의 연대였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 탄압과 방송 장악 시도가 노골화되던 시기, 대안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해낸 건 사실이다. 그 공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준희 교수의 말처럼, 잔치가 끝나면 전선은 달라진다. 공동의 적이 있을 때는 연대가 힘이 된다. 하지만 내부 문제, 즉 지지 진영의 비위, 도덕적 실패, 정책 실수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미디어로서의 신뢰가 유지된다.
진보 미디어가 오랫동안 보수 언론에 요구해온 게 바로 이것이었다. 권력을 비판하라. 불편한 진실도 보도하라. 광고주와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마라.
그 기준은 진보 미디어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니, 오히려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신뢰를 자산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미디어라면.
진보 미디어의 힘은 연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검증에서 나온다.
연대는 수단이다. 검증은 정체성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정치인의 홍보 채널과 구별되지 않는다.
한 줄 결론
팬이 보내는 환호는 미디어의 자산이 아니다. 시청자가 보내는 신뢰가 자산이다. 최욱은 지금 무엇을 쌓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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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ntEdge — 무딘 척하지만, 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