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사설 분석] 6·3 선거에서 합격점 받은 이재명 정부 1년, 더 큰 책임 따른다

[중앙일보 사설 분석] 6·3 선거에서 합격점 받은 이재명 정부 1년, 더 큰 책임 따른다

“칭찬인 척하는 경고, 격려인 척하는 감시. 중앙일보가 건네는 ‘합격점’에는 손잡이가 없다.”


팩트부터 깔고 가자

2025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민주당은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곳을 가져갔다. 국민의힘은 3곳. 나머지 2곳은 무소속·기타 계열이다. 비교 기준을 한번 잡아보자. 202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가져간 광역단체장은 단 5곳이었다. 3년 만에 5곳에서 12곳으로.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2.4배다.

투표율도 의미심장하다. 60.9%. 전국동시지방선거 역대 두 번째 수치다. 역대 최고는 1995년 첫 전국동시지방선거의 68.4%였다. 30년 역사에서 두 번째라면, 이건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의지 표명이다. 날씨 좋아서 나온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이 수치 두 가지만 놓고 보면, 결론은 선명하다. 6·3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에 대한 국민 심판에서, 국민이 비교적 분명한 방향을 선택한 선거였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걸 어떻게 읽었나

중앙일보는 이재명 정부에 “합격점”을 줬다. 제목부터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사설을 읽어 내려가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금방 느끼게 된다.

사설이 앞에 배치한 것들을 보자. 서울 탈환 가능성, 경남의 국민의힘 선방, 견제 심리의 존재. 이것들이 사설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2대 3이라는 결과는 뒤쪽에서 잠깐 언급되고, 이내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경고로 넘어간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민주당이 이겼다. 그런데 완전한 승리는 아니다. 국민의힘도 버텼다. 그러니 이재명 정부는 방심하면 안 된다.”

합격점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문장 구조는 전형적인 조건부 승인이다. 성적표를 건네면서 “하지만 긴장 늦추지 마라”는 말을 덧붙이는 형식. 마치 시험에서 90점 받은 학생한테 “이번엔 합격이야. 근데 10점짜리 문제 틀린 거 알지?”라고 말하는 선생님처럼.

중앙일보가 이런 사설을 쓰는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중앙일보의 프레임, 해체한다

보수 언론이 야당 혹은 진보 정부의 승리를 보도할 때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 있다. 이름하여 ‘불안한 승리’ 프레이밍이다.

구조는 이렇다.

1. 승리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팩트 왜곡은 신뢰를 잃으니까)

2. 그러나 승리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조건을 달아 제한한다.

3. 패자 측의 “선방”을 강조해 실질적 패배를 희석시킨다.

4. 승자에게 “더 큰 책임”이나 “경계심”을 촉구하며 불안감을 심는다.

이번 중앙일보 사설은 이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견제 심리”라는 표현이 특히 그렇다. 이 표현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다. 12대 3의 결과를 앞에 두고 “견제 심리”를 이야기한다는 건, 국민의 선택을 방향 지지가 아니라 불안한 위임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즉, “국민이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불안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는 뉘앙스를 심는 것이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투표율 60.9%가 그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역대 두 번째 투표율이라는 건 무관심층이 투표장에 나왔다는 뜻이다. 무관심층이 나오면 보통 집권 세력에 불리하다. 그게 정치학의 일반 법칙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권 민주당이 압승했다. 이걸 “견제 심리”로 읽으려면, 숫자를 무시하거나 재해석해야 한다. 중앙일보는 그 재해석을 선택했다.


BluntEdge 관점 — ‘합격점’이라는 손잡이 없는 칭찬

중앙일보가 “합격점”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하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체면을 지키면서도, 이재명 정부에 주도권을 주지 않으려는 것.

이건 일종의 언론 전략이다. 대놓고 “민주당이 졌다”고 쓰면 독자에게 신뢰를 잃는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크게 이겼다”고 쓰면, 보수 독자층에 신호가 잘못 전달된다. 그래서 찾아낸 균형점이 조건부 합격이다. 칭찬처럼 보이지만, 실은 감시 체제를 가동하는 선언이다.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치 세력이든 선거에서 이기면 책임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설에서 “더 큰 책임”은 중립적 관찰이 아니라, 잘못하면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의 언어로 기능한다. 칭찬을 주면서 동시에 채찍을 꺼내 드는 구조다.

한 가지 더. 사설이 서울과 경남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의도가 있다. 서울은 국민의힘이 선방했고, 경남은 박완수 지사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 두 지역을 부각시키는 건, 12대 3이라는 전국 그림을 서울·경남 프레임으로 좁혀서 패배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것이다. 독자가 전체 지도를 보지 않고 두 개의 점만 보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걸 카메라 비유로 말하자면, 렌즈를 일부러 좁게 조이는 것이다. 넓게 찍으면 민주당 압승이 보인다. 좁게 찍으면 국민의힘 선방이 보인다. 중앙일보는 후자를 선택했다.


선거 결과가 말하는 것

6·3 지방선거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국민은 이재명 정부의 1년 방향에 대해, 기권이 아닌 참여로, 견제가 아닌 지지로 응답했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완전무결하다는 뜻이 아니다. 12곳을 이겼어도, 정책적 과제는 여전히 쌓여 있다. 부동산, 물가, 청년 일자리. 이런 의제들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계속 판단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판단은 선거 이후의 이야기다. 선거 결과 그 자체를 해석하는 단계에서, “국민이 사실은 불안해서 선택했을 뿐”이라는 프레임을 먼저 심는 건 — 팩트가 아니라 의도다.

중앙일보 사설의 문제는 이재명 정부를 비판했다는 게 아니다. 비판은 언론의 역할이고,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선거 결과의 의미 자체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비판의 포석을 깔았다는 것이다. 합격점이라는 단어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선택을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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