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5·18 당헌엔 넣고 헌법엔 반대한 이유

국힘, 5·18 당헌엔 넣고 헌법엔 반대한 이유

팩트부터 깔고 가자

2025년 5월 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이 발의한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개헌안’이 표결조차 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국민의힘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반대 논리는 명확했다. “이재명 독재 연장용 개헌”, “권력 확장 수단”, “정치적 쇼”.

그로부터 정확히 11일 뒤인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장.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이야말로 5·18 정신을 권력 확장 도구로 쓰고 있다.” 5·18 정신을 지키겠다는 선언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뭔가 이상하다. 5·18 정신을 헌법에 넣자는 제안은 거부했는데, 그 정신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거다. 이 모순을 한겨레가 정확히 찔렀다. 5월 19일자 사설 제목은 이랬다. “5·18 정신 진심이면, 개헌으로 증명하라”.

2020년의 약속, 2025년의 배신

시간을 4년 전으로 돌려보자. 2020년 9월 2일, 미래통합당은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꿨다. 그리고 당헌 전문에 이 문장을 삽입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4·19 혁명과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의 헌정 정신을 계승한다.”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당명 개정 전 당내 논의 과정에서 비판론자들도 있었다. “5·18을 계승한다고 명시하는 게 우리 정체성에 맞느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결국 통과됐다. 이유는 명확했다. 보수정당의 과거 청산, 호남 민심 공략, 중도층 포용 이미지. 전략적 결단이었다.

그렇게 당헌에 새긴 정신이, 5년도 안 돼서 “정치적 쇼”라는 이유로 헌법 전문 진입을 거부당한 것이다. 아이러니를 넘어서 기만에 가깝다.

국힘의 논리: “헌법은 안 되고, 당헌은 된다”

국민의힘 측 논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1. 헌법 전문 개정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권력 확장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2. 5·18 정신은 이미 헌법 정신에 포함돼 있다 → 굳이 명시할 필요 없다.

3. 민주당이 5·18을 도구화하고 있다 → 진정성 없는 정치 쇼다.

일견 논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구멍이 있다.

첫째, 당헌에는 왜 명시했나?

헌법 정신에 이미 포함돼 있다면, 당헌에 굳이 쓸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2020년엔 당헌에 새겼다. 그때는 “상징적 의미”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럼 왜 헌법엔 안 되는가?

둘째, 권력 확장과 무슨 상관인가?

헌법 전문은 법적 효력이 없는 선언적 조항이다. 대통령 임기나 권한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5·18 정신 계승”이라는 문장이 어떻게 독재 연장 수단이 되는가? 이 논리라면 3·1운동, 4·19 혁명도 다 빼야 한다.

셋째, 민주당이 도구화한다고 우리는 안 하나?

상대가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해서, 옳은 일까지 반대하는 건 진영 논리다. 5·18 정신을 지키는 게 진심이라면, 누가 발의했든 찬성해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국민의힘은 5·18 정신을 ‘신념’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전략’으로 채택했다는 것.

2020년 당명 개정 당시, 국힘은 호남에서 참패했다. 21대 총선에서 전남·북 29석 중 단 3석. 이대론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래서 상징을 바꿨다. 5·18을 당헌에 넣고, “우리도 민주화 계승 정당”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2025년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 대통령이 탄핵되고, 보수 결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때 “5·18 헌법 명시”에 찬성하면? 보수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다. “민주당 도와주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래서 반대한 거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표가 되면 찬성, 표가 안 되면 반대.

한겨레 사설이 날카로운 이유

한겨레 5월 19일자 사설은 이 지점을 정확히 찔렀다.

“5·18 정신을 당헌에 명기한 것이 진심이었다면, 헌법 전문 개헌에 찬성해야 한다. 진심이 아니었다면, 당헌에서 빼라. 말과 행동이 다르면, 그건 쇼다.”

이 논리는 반박이 불가능하다. A와 B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둘 다 하려면 모순이 된다.

국민의힘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나? 해결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려 했다. “민주당이 정치 쇼 한다”고 공격하며, 본질을 흐렸다. 전형적인 프레임 전환 전략이다.

하지만 팩트는 남는다. 당헌에 쓴 정신을, 헌법에 넣자는 제안은 거부했다는 팩트.

BluntEdge 관점: 이건 쇼가 맞다

나는 진영 논리를 싫어한다. 민주당이 발의했다고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국민의힘이 반대했다고 무조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이슈로 판단해야 한다.

그 기준으로 볼 때, 이번 국민의힘의 행동은 명백한 쇼다.

첫째, 당헌과 헌법의 이중 잣대를 설명할 논리가 없다. “당헌엔 넣어도 되지만 헌법엔 안 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헌법이 더 상위 규범이고, 더 엄중한 곳이다. 당헌에 쓸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헌법에도 찬성해야 맞다.

둘째, 반대 논리가 억지다. “이재명 독재 연장”? 헌법 전문 개정이 대통령 임기나 권한과 무슨 상관인가. 이건 논리가 아니라 레토릭이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프레임일 뿐, 실질적 근거는 없다.

셋째, 행동이 말을 배신했다. 2020년 당명 개정 때 국민의힘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5·18 정신 계승도 그 일환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정신을 법제화하자는 제안엔 반대했다. 이건 “우리가 쇼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자백한 것과 같다.

물론 민주당도 깨끗하진 않다.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온 역사가 있다. 하지만 이번 이슈에서 민주당의 위선과 국민의힘의 위선은 무게가 다르다. 민주당은 일관되게 5·18 헌법 명시를 주장해왔다. 반면 국민의힘은 2020년엔 찬성,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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