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분석]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되는 북-중 관계

[한겨레 사설 분석]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되는 북-중 관계

**팩트부터 깔고 가자.** 시진핑이 7년 만에 평양을 직접 밟았다. 숫자 하나가 모든 걸 설명한다. 기고문 안에 ‘전략적’ 여덟 번, ‘비핵화’ 0번.


왜 지금, 왜 평양인가

외교에서 ‘방문’은 그 자체가 메시지다. 정상이 직접 움직인다는 건, 전화 한 통이나 특사 파견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내겠다는 뜻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번 방북은 2019년 이후 7년 만이다. 그 사이 세계는 꽤 많이 바뀌었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됐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서방과 정면 충돌했으며,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완성 단계까지 밀어붙였다. 한반도 비핵화를 외치던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점점 공허해졌다.

그 맥락 위에서 시진핑은 평양행을 택했다. 우연이 아니다.


팩트 정리: 기고문이 말하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방북에 앞서 시진핑 주석은 북한 노동신문에 기고문을 게재했다. 외교적 관례상 기고문은 방문의 ‘의제 예고편’이다. 그러니까 기고문을 읽으면 이번 방문의 목적을 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 **’전략적(战略)’**: 기고문 전체에 걸쳐 **8회** 등장
  • **’비핵화(无核化)’**: **0회**
  • 이 두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2019년 방북 당시 시진핑은 비핵화를 공식 의제로 언급했다. 그게 5년 전이다. 그리고 이번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이건 실수가 아니다. 외교 기고문에서 특정 단어의 ‘부재’는 그 자체로 정치적 결정이다.

    반면 ‘전략적’이라는 단어는 압도적이다.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북중 관계의 성격을 규정하는 개념어로 반복 사용됐다. 기존의 공식 표현인 ‘전통적 친선관계’가 혈맹 시절의 감성적·역사적 유대를 강조하는 말이었다면, ‘전략적 파트너십’은 현재와 미래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선언이다. 감정이 아니라 이익으로 묶이겠다는 뜻이다.


    사설 분석: 한겨레가 짚은 지점

    한겨레 사설은 이번 북중 관계 격상을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보지 않는다. 사설의 핵심 논지는 이렇다. 중국이 비핵화 압박 대열에서 사실상 이탈하고,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한 채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맞서는 ‘대항 진영’을 북한, 러시아와 함께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러시아는 이미 앞서 그 길을 걸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관계는 군사협력 수준으로 격상됐고,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공급하며 실질적인 전쟁 파트너가 됐다. 중국이 여기에 합류하는 그림이 완성된다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기능을 잃는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이행 의지를 버린 순간, 국제 제재 레짐은 껍데기만 남는다.

    한겨레가 이 지점을 비교적 명확하게 짚었다는 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사설의 논조는 ‘우려와 촉구’ 수준에서 멈춘다. 현 정부의 외교 전략에 대한 비판적 분석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은 아쉽다.


    BluntEdge 관점: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북중 관계의 격상 자체는 예측 가능한 흐름이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될수록, 중국이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 재정의하려는 유인은 커진다. 이건 놀라운 반전이 아니라 구조적 귀결이다.

    진짜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 구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다.

    현 정부의 외교 전략은 사실상 한미일 삼각 공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후 한미일 공조는 제도화 수준으로 격상됐고, 정부는 이를 외교적 성과로 홍보해왔다. 그런데 이 전략의 전제는 무엇인가. 대북 압박의 실효성, 중국의 제재 동참, 그리고 미국 주도 질서의 지속성이다.

    이 전제들이 하나씩 흔들리고 있다.

  • 중국은 비핵화 언급을 지웠다.
  • 러시아는 북한의 사실상 핵 보유를 용인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 미국 내부에서도 대북 정책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한미일 공조라는 외교 전략의 유효 범위가 급속히 좁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응답은? 공조 강화, 공조 강화, 또 공조 강화다. 망치를 쥐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이는 법이다. 전략이 없는 게 아니라, 전략이 하나뿐인 게 문제다.

    실용 외교란 진영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진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공간에서 국익을 챙기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도, 노태우 정부도, 김대중 정부도, 이명박 정부의 초기도 — 각자의 방식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이건 좌파 외교도 우파 외교도 아니다. 그냥 외교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건, 북중러 삼각축의 완성을 ‘우려’하는 성명이 아니다. 그 구도 속에서 한국이 어떤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는지, 중국과의 외교 채널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다.

    균형을 잡아야 할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 줄 결론

    **비핵화가 사라진 기고문 한 편이, 공조 강화 성명 수십 장보다 더 솔직하게 현실을 말하고 있다.**


    📺 YouTube: 블런트엣지 | 🐦 X: @blunt_edge | 📝 블로그: onedo4u.com

    BluntEdge — 무딘 척하지만, 벤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