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다주택자는 ‘마귀’라고 했는데, 집 4채 총리 지명

[조선일보 사설 분석] 다주택자는 ‘마귀’라고 했는데, 집 4채 총리 지명

*조선일보가 갑자기 다주택자 편을 들기 시작했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팩트부터 깔고 가자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주택 4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건 논란이 아니라 공식 재산 신고 내역이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공직 임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반복해서 밝혀온 것도 사실이다. “투기 세력”과 “공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그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원칙적 발언이었다. 대선 과정에서도, 집권 이후에도 이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돼왔다.

그 원칙과 이번 인사가 충돌한다. 이건 지적받아야 맞다. 사실관계를 먼저 인정하고 시작해야 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


조선일보 사설, 뭘 쓴 건가

조선일보는 이번 사설에서 한성숙 후보자의 다주택 보유를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이재명 정부가 다주택자를 사실상 공적 배제 대상으로 분류해왔는데, 정작 총리 후보로 다주택자를 지명했다는 논리다. 원칙 위반, 내로남불, 위선. 이런 단어들이 사설 곳곳에 깔려 있었다.

표면만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다주택 규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왔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문재인 정부 시절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될 때마다 조선일보는 “재산권 침해”, “시장 왜곡”, “징벌적 과세”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다주택자는 투기꾼이 아니라 합법적 투자자이며, 규제가 오히려 시장을 망친다는 논리를 수년 동안 지면에 실었다. 다주택 보유 자체를 문제 삼는 프레임에 줄곧 반대해온 신문이다.

그 신문이 지금은 “다주택자를 총리로 임명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프레임을 해체해보자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조선일보가 진짜 다주택 문제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팩트는 맞게 쓰되, 목적은 이재명 정부 흔들기다.

구체적으로 풀어보자. 이 사설의 프레임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내로남불’ 프레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를 강하게 비판해온 발언들을 나열하고, 그 위에 한성숙 후보자의 4채 보유 사실을 얹는다. 결론은 자동 생산된다. “말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이 프레임은 사실 관계 측면에서 허구가 없다. 진술이 모두 참이기 때문에 반박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더 교묘하다.

둘째, 진보 정부 도덕성 공격 프레임이다.

보수 언론이 진보 정권을 공격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방식이 있다. 집, 자녀 교육, 특권 의혹이다. 이번에도 동일한 패턴이다. 다주택 문제를 정책 검증이 아닌 ‘도덕성 위반’으로 코딩한다. 그러면 정책 토론이 사라지고 인격 공격의 전선이 형성된다.

셋째, 자기 모순 세탁 프레임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을 씀으로써 자신들이 다주택 규제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얻는다. “우리도 다주택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사실은 정반대의 논조를 유지해온 자기 모순을 덮어버린다. 비판의 화살이 이재명을 향하는 동안, 조선일보의 과거 기사들은 검색되지 않는다.


BluntEdge 관점

원칙 위반은 분명히 짚어야 한다. 다주택자 공직 임용에 부정적인 원칙을 반복 천명해온 정부가 총리 후보에서 그 원칙과 충돌하는 인사를 냈다면, 그건 지지층에게도, 비지지층에게도 설명이 필요한 지점이다. 청문회에서 후보자는 이 부분에 대해 소명해야 하고, 정부는 원칙과 인사 결정 사이의 판단 기준을 공개적으로 해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 비판을 조선일보가 한다고 해서, 그 비판의 프레임까지 따라갈 이유는 없다.

비판의 내용이 옳을 수 있다. 동시에 비판자의 의도가 불순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공존한다. 진짜 다주택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과, 다주택 이슈를 정치 공격의 수단으로 쓰는 언론은 같은 팩트를 전혀 다른 목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누가 비판하느냐와 왜 비판하느냐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조선일보가 이재명 정부에 비판적인 사설을 쓴다는 사실 자체는 새롭지 않다. 그들의 역할이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비판이 일관된 원칙에서 나오는가다. 다주택 규제를 반대해온 신문이 다주택 임명을 비판하는 건, 팩트를 도구로 쓰는 것이지 원칙에서 나온 비판이 아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에 끌려가는 순간, 조선일보는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재명 정부가 원칙을 지켰는지 검증하는 일은 언론의 역할이 맞다. 그런데 그 검증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그게 독자의 역할이다. 조선일보의 이번 사설은 팩트를 전달했지만 프레임은 왜곡했다. 두 가지를 분리해서 읽어야 이 사설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


한 줄 결론

비판의 방향이 옳다고 해서, 비판자의 의도까지 옳은 건 아니다. 팩트는 받되, 프레임은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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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ntEdge — 무딘 척하지만,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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