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선거, 유권자 절반이 모르는 95조 원의 비밀

교육감 선거, 유권자 절반이 모르는 95조 원의 비밀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팩트부터 깔고 가자.

2022년 6월, 전국 17개 시도에서 동시에 교육감 선거가 치러졌다. 그해 교육 예산은 95조 원. 국방비(54조)보다 많고, 복지 예산 다음으로 큰 규모다. 이 돈을 집행할 최고 책임자를 뽑는 선거였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유권자 56.4%가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과반이다. 투표율은 50.9%로 역대 최저를 경신했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국민 절반은 95조 원 쓸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 나머지 절반도 별로 신경 안 쓴다.

깨끗한 선거라는 환상

교육감 선거는 2010년부터 주민직선제로 바뀌었다. 당시 명분은 명확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자. 정당 공천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교육 전문성으로 뽑자.”

이론적으론 아름답다. 실전에선 어떨까?

2022년 서울 교육감 선거만 봐도 답이 나온다. 진보 진영은 단일화 과정에서 경선 불복이 터졌고, 보수 진영은 후보 단일화를 둘러싸고 고소·고발전이 벌어졌다. 경기도는 더 심했다. 보수 후보 3명이 끝까지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진보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정당 표시가 없다고 정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음지로 내려간다. 유권자는 후보가 누군지 모르고, 진영은 뒷거래와 여론몰이로 승부를 본다. 공천이 없으니 책임도 안 진다. 이게 정말 “깨끗한 선거”인가?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한겨레는 최근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선관위가 홍보를 강화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관심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이미 15년째 직선제를 해왔다. 홍보 부족 때문일까? 아니다. 제도 설계 자체가 무관심을 만들고 있다.

이유 1: 효과가 너무 늦게 나타난다

교육정책은 단기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학생 한 명이 초등학교 입학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2년. 정책 효과를 체감하려면 최소 4~5년은 걸린다. 그 사이 교육감은 재선에 성공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유권자 입장에선 누가 잘했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

대통령 선거는 경제·외교·안보 이슈가 실시간으로 터진다. 시장·도지사 선거는 지역 개발, 교통, 복지가 눈에 보인다. 교육감? 무상급식 확대했다는 뉴스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전문가들끼리 싸우는 얘기로만 들린다.

이유 2: 정당 표시가 없으니 판단 기준이 없다

투표용지에 이름만 쭉 적혀 있다. 약력은 있지만, 대부분 “교육경력 30년, 교수, 교육청 근무” 같은 식이다. 이걸로 뭘 판단하라는 건가?

결국 유권자는 이름 인지도언론 보도 톤, 또는 지인 추천으로 찍는다. 정책? 공약? 읽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정당 공천을 없앤 건 중립을 지키려던 거였는데, 실제론 판단 불능 상태를 만들어버렸다.

이유 3: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

교육감이 실정을 해도, 그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탄핵? 불가능하다. 소환? 제도가 없다. 재선 도전 시 심판? 그마저도 쟁점이 불명확해서 “현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선되는 경우가 많다.

권한은 막강한데, 책임은 희미하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4년짜리 전문가 독재인가?

BluntEdge 관점: 직선제가 최선인가?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직선제가 정말 최선인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민주적 정당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 없는 선거로 뽑힌 사람의 정당성은 얼마나 실질적인가? 투표율 50%에 관심도 44%. 이건 형식적 민주주의일 뿐,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안은 몇 가지가 있다.

대안 1: 정당 공천 부활

솔직하게 인정하자. 교육도 정치다. 무상급식, 자사고 폐지, 학생인권조례, 교원평가 – 전부 이념과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당 표시를 명확히 하는 게 유권자에게 더 친절하다. 지금처럼 숨기면서 뒤에서 진영 싸움 하는 것보다 낫다.

대안 2: 의회 선출 방식

미국 일부 주에서는 교육위원회(Board of Education)를 직선으로 뽑고, 그 위원회가 교육감을 임명한다. 의회가 뽑는 방식도 있다. 이렇게 하면 전문성 검증정치적 책임 둘 다 챙길 수 있다. 교육감이 실정하면 의회가 불신임할 수 있다.

대안 3: 시도지사 임명 + 의회 동의

교육감을 시도지사가 임명하되, 지방의회 동의를 받게 하는 방식이다. 지사는 주민이 직접 뽑았으니 정당성 있고, 의회 동의를 거치면 견제 장치도 생긴다. 현재처럼 누가 뽑았는지도 모르는 상태보다는 책임 소재가 명확하다.

공론화는 무슨, 직시가 먼저다

한겨레는 “공론화를 통해 관심을 높이자”고 했다. 좋은 말이지만, 15년 동안 이미 해봤다. 홍보 예산도 썼고, 토론회도 열었고, 언론도 보도했다. 그런데도 관심도는 제자리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제도가 관심을 유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효과는 안 보이고, 판단 기준도 없고, 책임도 안 지는 선거에 누가 열정을 쏟겠나?

공론화 이전에, 직선제 자체가 작동 가능한 제도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형식적 민주주의에 갇혀서 실질적 무책임을 방치하는 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아니라 폼만 지키는 거다.

한 줄 결론

95조 예산 책임자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한테 맡기는 나라는, 민주적이라기보다 무책임하다.


BluntEdge — 무딘 척하지만,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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